롤렉스는 언제부터 비싼 시계가 되었을까?
지금의 롤렉스는 누구나 떠올리는 대표적인 고가의 명품시계입니다.
대표적인 스틸 스포츠 모델인 서브마리너조차 2026년 현재 미국 공식 가격이 1만 달러를 넘어섰고, 데이토나나 데이데이트처럼 그보다 훨씬 높은 가격대의 모델도 있습니다. 특히 일부 인기 모델은 매장에서 구하기 어렵다 보니 중고시장에서 정가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모습도 이제는 낯설지 않습니다.
그런데 롤렉스가 처음부터 이렇게 비싼 시계였을까요?
과거 롤렉스 가격을 찾아보면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숫자가 등장합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옛날 가격과 현재 가격만 비교해서도 정확히 답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수십 년 동안 물가가 오른 만큼 화폐의 가치 역시 크게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물가까지 고려했을 때도 롤렉스는 정말 비싸진 것일까요?
[이미지 출처 : 롤렉스 공식 홈페이지]
초기 롤렉스의 모습을 살펴보면 지금과는 조금 다른 방향성이 보입니다.
창립자 한스 빌스도르프는 손목시계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중요시했습니다.
당시에는 회중시계가 일반적이었고, 손목시계는 외부 충격이나 먼지, 습기에 쉽게 노출됐습니다.
손목시계가 일상적인 도구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았고, 롤렉스는 이런 약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1926년에는 방수와 방진을 구현한 오이스터 케이스를 선보였고, 이듬해에는 메르세데스 글리츠가 롤렉스 오이스터를 착용하고 영국해협을 횡단하면서 방수 성능을 알렸습니다. 1931년에는 로터가 회전하면서 태엽을 감는 퍼페추얼 로터 방식의 셀프 와인딩 시스템을 특허로 등록했습니다.
지금 보면 당연해 보이는 방수와 자동 와인딩이지만 당시 손목시계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기술적 과제였습니다.
즉 초기 롤렉스가 구축하려 했던 이미지는 단순히 비싸고 화려한 시계보다는 정확하고 튼튼하며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손목시계에 가까웠습니다.
이랬던 롤렉스의 방향성은 1950년대에 확실해집니다.
[이미지 출처 : 롤렉스 공식 홈페이지]
1953년에는 익스플로러와 서브마리너가 등장했고, 1955년에는 GMT-마스터가 출시됐습니다.
서브마리너는 다이버를 위해 만들어졌고, GMT-마스터는 여러 시간대를 이동하는 항공 종사자들이 서로 다른 지역의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개발됐습니다.
롤렉스 역시 당시 이 시계들을 단순한 고급시계가 아니라 전문적인 활동을 위한 '도구(Tool)'라고 설명합니다.
다이빙, 항공, 등반, 과학 탐사처럼 명확한 목적을 가진 시계들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롤렉스가 툴워치만 만들었던 것은 아닙니다.
1956년에는 데이데이트가 등장합니다. 데이데이트는 처음부터 18캐럿 골드 또는 플래티넘으로만 제작됐고, 전용으로 개발된 프레지던트 브레이슬릿과 함께 롤렉스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담당했습니다.
결국 1950년대의 롤렉스에는 두 가지 모습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서브마리너와 GMT-마스터처럼 전문적인 환경에서 사용하는 실용적인 시계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데이데이트처럼 처음부터 귀금속으로 만들어진 고급시계가 있었습니다.
'과거 롤렉스는 저렴한 툴워치 브랜드였다'고 단순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이죠.
그렇다면 실제 가격은 어땠을까요?
1964년 미국의 Skin Diver 매거진에 실린 롤렉스 광고를 보면 스테인리스 스틸 서브마리너의 가격은 195달러였습니다. 지금의 서브마리너 가격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숫자입니다.
하지만 이 가격만 보고 당시 롤렉스가 저렴한 시계였다고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같은 광고에는39.95달러짜리 수중시계도 함께 언급되는데, 서브마리너는 그보다 약 5배 비쌌습니다. 지금처럼 압도적인 가격대는 아니었더라도 당시 시장에서 저가 시계에 속했던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고려해야 합니다. 1964년의 195달러와 2026년의 195달러는 구매력이 전혀 다르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롤렉스가 실제로 얼마나 비싸졌는지를 확인하려면 단순한 판매 가격이 아니라 물가까지 반영해서 비교해야 합니다.
조금 더 비교하기 쉬운 서브마리너 데이트를 보겠습니다. 역사적인 미국 리테일 가격 자료에 따르면 1973년 스테인리스 스틸 서브마리너 데이트의 가격은 385달러였습니다. 이를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를 기준으로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2,900달러 수준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서브마리너 데이트는 얼마일까요?
2026년 8월 현재 롤렉스 미국 공식 홈페이지에서 블랙 다이얼·블랙 베젤의 오이스터 스틸 서브마리너 데이트 Ref. 126610LN은 11,350달러입니다.
단순하게 비교해도 차이가 상당합니다. 1973년 가격을 현재 구매력으로 환산한 약 2,900달러보다 현재 실제 판매 가격이 약 4배 높습니다.
즉 롤렉스의 가격 상승을 단순히 '50년 동안 물가가 올랐으니까'라고만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2000년대 또한 비슷한 흐름을 보입니다.
2000년 7월 미국 리테일 가격표를 정리한 자료에서는 스틸 서브마리너 Ref. 14060이 3,100달러, 날짜 기능이 있는 Ref. 16610이 3,575달러로 기록돼 있습니다. 같은 자료에서 GMT-마스터 II Ref. 16710은 3,500달러, 스틸 데이토나는 5,500달러였습니다.
현재 스틸 서브마리너 Ref. 124060의 미국 공식 가격은 10,050달러, 스틸 서브마리너 데이트 Ref. 126610LN은 11,350 달러입니다.
물론 과거 모델과 현재 모델을 완전히 같은 제품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수십 년동안 무브먼트와 케이스 구조, 브레이슬릿, 클라스프, 베젤 소재와 가공 기술까지 많은 부분이 달라졌습니다. 따라서 가격 상승분 전체를 단순히 '롤렉스라는 이름값'이라고 설명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자료를 보면 적어도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 번에 가격이 뛴 것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가격대가 단계적으로 올라왔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2000년에도 서브마리너 데이트가 3,575달러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금과 같은 1만 달러 이상의 가격대는 롤렉스 역사 전체로 보면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 롤렉스 공식 홈페이지]
그렇다면 언제부터 롤렉스가 지금과 같은 고가의 명품시계가 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실 특정 연도 하나로 답하기는 어렵습니다. 롤렉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방향을 바꿔 명품 브랜드가 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브마리너와 GMT-마스터 같은 시계는 전문적인 환경에서 사용하기 위한 도구로 출발했고, 롤렉스는 이후에도 이 모델들의 기본적인 성격을 이어왔습니다. 달라진 것은 이 시계들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였습니다.
수십 년 동안 서브마리너, GMT-마스터, 데이토나 같은 모델이 하나의 디자인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고, 롤렉스라는 이름의 인지도와 상징성도 함께 커졌습니다. 여기에 제품의 지속적인 개선과 가격 인상이 더해지면서 과거 전문적인 도구로 출발했던 시계들이 오늘날에는 고가의 럭셔리 워치로 자리 잡았습니다.
결국 롤렉스는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가격의 명품시계였던 것도, 어느 순간 갑자기 비싼 시계가 된 것도 아닙니다.
[이미지 출처 : 롤렉스 공식 홈페이지]
정확성과 방수, 내구성을 앞세운 손목시계로 신뢰를 쌓고, 서브마리너와 GMT-마스터, 데이토나처럼 수십 년 동안 이어지는 대표 모델을 만들면서 브랜드의 위치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와 함께 가격 역시 꾸준히 올라왔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롤렉스를 사면서 지불하는 가격에는 시계 자체의 소재와 기술뿐 아니라, 지난 100년 동안 왕관 로고가 쌓아온 시간까지 함께 포함돼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