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다이얼은 하나도 없다, 롤렉스 스톤 다이얼이 특별한 이유
2025년 롤렉스는 오이스터 퍼페츄얼에 새로운 다이얼 컬러를 추가했습니다. 라벤더와 베이지, 그리고 출시와 함께 눈길을 끈 피스타치오입니다.
부드러운 파스텔톤의 그린이 특징인 피스타치오는 기존의 선명한 유광 컬러와 달리 매트한 래커 마감을 사용합니다.
만드는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황동으로 만든 다이얼 베이스 위에 래커를 여섯 겹에 걸쳐 적용해 균일한 표면을 완성합니다.
그런데 롤렉스에는 이보다 훨씬 전부터 전혀 다른 방법으로 만들어진 그린 다이얼이 있었습니다.
바로 말라카이트입니다.
피스타치오가 롤렉스가 의도한 그린을 일정하게 만들어내는 다이얼이라면, 말라카이트는 천연석이 가진 녹색과 줄무늬 자체가 다이얼이 됩니다.
같은 롤렉스의 그린이지만 색을 다루는 방법은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저는 이 차이가 단순히 래커와 천연석이라는 소재의 차이보다 더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같은 결과에 가까워지기 위해 여러 공정을 거치고, 다른 하나는 애초에 똑같은 결과를 만들 수 없는 소재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시계에 돌을 올리기 시작한 시대
스톤 다이얼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브랜드가 피아제입니다.
피아제는 1957년 두께 2mm의 울트라씬 수동 무브먼트 칼리버 9P를 선보였습니다. 얇은 무브먼트가 만들어낸 공간은 이후 다이얼 디자인을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됐고, 1963년부터 오팔과 터콰이즈, 코랄, 타이거즈 아이 같은 장식용 스톤을 다이얼과 케이스에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라피스 라줄리와 말라카이트를 비롯한 강렬한 천연 소재는 피아제의 컬러를 보여주는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하지만 천연석을 시계에 활용한 브랜드가 피아제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롤렉스 역시 1970년대부터 라피스 라줄리, 말라카이트, 타이거즈 아이, 오닉스, 코랄, 터콰이즈 등 엄선한 천연석 다이얼을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일반적인 컬러 다이얼과 결정적으로 다른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같은 종류의 돌을 사용해도 완전히 같은 다이얼을 다시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같은 말라카이트라도 얼굴은 다르다
말라카이트 다이얼을 여러 개 나란히 놓고 보면 이 특징이 훨씬 쉽게 보입니다.
어떤 다이얼은 녹색 줄이 비교적 길게 이어지고, 어떤 다이얼은 굴곡이 크게 나타납니다. 색의 농도와 패턴의 간격도 조금씩 다릅니다.
브랜드가 줄무늬를 직접 그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원석을 잘라 그대로 다이얼에 올리는 것도 아닙니다.
롤렉스는 천연석의 패턴을 살펴본 뒤 그중에서도 선의 흐름이 자체적인 미적 기준에 가장 잘 맞는 부분을 선별한다고 설명합니다.
저는 이 과정이 스톤 다이얼을 이해하는 데 꽤 중요한 부분이라고 봅니다.
흔히 천연석 다이얼을 두고 '자연이 만든 하나뿐인 다이얼'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완성된 시계에는 자연의 우연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돌의 무늬는 자연이 만들지만, 그중 어떤 부분을 롤렉스의 다이얼로 남길지는 사람이 결정합니다.
스톤 다이얼 하나에 자연의 우연과 브랜드의 기준이 함께 들어가는 셈입니다.
피스타치오와 말라카이트가 보여주는 두 가지 방식
여기서 다시 피스타치오를 보면 처음과는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롤렉스는 피스타치오 다이얼을 만들 때 황동 베이스에 래커를 여러 차례 적용해 규칙적이고 균일한 표면을 만듭니다.
색을 정하고, 그 색이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도록 공정을 통제하는 방식입니다.
말라카이트에서는 그 방법을 그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녹색의 농도와 줄무늬의 방향은 이미 돌 안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롤렉스가 할 수 있는 것은 무늬를 새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수많은 무늬 가운데 자신의 기준에 맞는 것을 찾아내는 일에 가깝습니다. 결과적으로 피스타치오에서는 제조 기술로 편차를 줄이고, 말라카이트에서는 자연이 만든 편차 가운데 무엇을 남길지를 결정합니다.
개인적으로 스톤 다이얼이 재미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롤렉스는 부품의 설계와 제작, 조립과 테스트까지 광범위하게 자체적으로 수행하고, 완성도와 일관성을 중요하게 다루는 브랜드입니다.
그런 브랜드의 시계에서 다이얼의 무늬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설계할 수 없습니다.
대신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선별이라는 방식으로 자신의 기준 안에 넣습니다.
특별한데도 흔하지 않은 이유
[이미지 출처 : 롤렉스 공식 홈페이지]
그렇다면 이렇게 하나씩 다른 다이얼을 왜 더 많이 볼 수 없는 걸까요?
먼저 소재 자체의 제약이 있습니다.
원석 전체가 다이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색과 구조, 패턴을 살펴보고 롤렉스가 요구하는 미적 기준에 맞는 부분을 골라야 합니다.
일반적인 컬러 다이얼처럼 원하는 색을 정한 뒤 같은 결과를 반복해서 만들어내는 방식과는 출발부터 다릅니다.
하지만 생산 방식만으로 스톤 다이얼의 위치를 전부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말라카이트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피스타치오는 다이얼 전체가 비교적 차분한 하나의 그린으로 보이지만, 말라카이트는 강한 녹색 위로 천연석 특유의 줄무늬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라피스 라줄리와 타이거즈 아이, 터콰이즈 같은 다른 스톤 역시 일반적인 블랙이나 블루 다이얼과 비교하면 존재감이 강합니다.
누구에게나 쉽게 권할 수 있는 다이얼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익숙한 롤렉스와 다른 얼굴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그 점이 이유가 됩니다.
같은 모델과 같은 소재를 선택해도 다른 사람의 시계와 다이얼까지 완전히 같지는 않으니까요.
완벽하게 만드는 것과 완벽한 것을 고르는 것
[이미지 출처 : 롤렉스 공식 홈페이지]
롤렉스가 천연석 다이얼을 선보이기 시작한 지도 반세기가 넘었습니다.
그 사이 롤렉스의 다이얼에는 수많은 색과 마감이 등장했고, 지금도 천연석을 활용한 다이얼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처음 스톤 다이얼을 보면 가장 쉽게 눈에 들어오는 특징은 하나뿐인 무늬입니다.
하지만 피스타치오와 말라카이트를 함께 놓고 보면 저는 조금 다른 부분이 보입니다.
피스타치오에서는 원하는 색과 표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제조 공정을 통제합니다.
반대로 말라카이트에서는 자연이 이미 만들어놓은 결과 가운데 자신의 기준에 맞는 부분을 찾아냅니다.
하나는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기술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존재하는 결과를 알아보는 기준인 셈입니다.
그래서 롤렉스의 스톤 다이얼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희소성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원하는 형태로 만들 수 없는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결국 완성된 다이얼을 보면 롤렉스가 무엇을 아름답다고 판단했는지는 남습니다.
피스타치오가 롤렉스가 색을 얼마나 일정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면, 말라카이트는 정반대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직접 만들 수 없는 무늬 가운데 무엇을 자신의 시계로 선택할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하나뿐이라는 사실보다, 그 선택의 기준이 스톤 다이얼을 더 롤렉스답게 만드는 부분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