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렉스는 왜 시계를 잠수정 안이 아니라 밖에 달았을까?
[이미지 출처 : 롤렉스 공식 홈페이지]
지금의 롤렉스에서 방수는 특별한 기능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서브마리너는 300m, 씨-드웰러는 1,220m, 롤렉스 딥씨는 3,900m까지 방수되며, 딥씨 챌린지는 무려 11,000m까지 방수를 보장합니다. 사람이 스쿠버 다이빙으로 접근할 수 있는 범위를 생각하면 상당히 과한 숫자입니다.
그런데 롤렉스는 오래전부터 사람보다 시계를 더 깊은 곳으로 보내왔습니다.
1960년에는 실험용 시계 딥 씨 스페셜(Deep Sea Special)을 트리에스테 잠수정 안이 아닌 외부에 부착한 채 마리아나 해구로 내려보냈습니다.
왜 굳이 시계를 밖에 달았을까요?
저는 이 선택이 롤렉스의 심해 시계를 이해하는데 꽤 중요한 부분이라고 봅니다.
잠수정 안에서는 사람이 보호받지만, 밖에서는 시계가 스스로 버텨야 하기 때문입니다.
방수를 말하는 것과 증명하는 것은 달랐다
롤렉스와 방수의 관계는 1926년 오이스터 케이스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도록 밀페된 케이스를 만들었고, 이듬해에는 영국의 수영선수 메스레데스 글리츠가 오이스터를 착용한 채 영국 해협에 도전했습니다. 1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물에 노출된 뒤에도 시계가 정상 작동하면서 실제 환경에서 방수 성능을 보여줬습니다.
여기서 이미 롤렉스가 방수를 보여주는 방식이 드러납니다.
사양표에 방수 수치를 적는 것보다 실제 환경에서 그 수치를 증명하는 것을 중요하게 본 것입니다.
이후 그 실험의 방향은 바다를 건너는 것에서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으로 바뀝니다.
잠수정 밖에 달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1950년대 롤렉스는 극한의 수압을 시험하기 위해 딥 씨 스페셜이라는 실험용 시계를 개발했습니다.
일반적인 손목시계와는 모습부터 달랐습니다. 깊은 돔 형태의 크리스털과 거대한 케이스를 갖춘, 착용성보다는 압력을 견디는 데 초점을 맞춘 시계였습니다.
그리고 1960년 1월 23일, 자크 피카르와 돈 월시가 심해잠수정 트리에스테를 타고 마리아나 해구의 챌린저 해연으로 내려갔습니다.
딥 씨 스페셜은 두 사람의 손목에도, 잠수정 내부에도 없었습니다.
트리에스테의 외부에 부착돼 있었습니다.
수심 10,916m에서 시계가 받은 압력은 제곱센티미터당 1톤을 넘었습니다. 수면으로 돌아온 뒤에도 정상 작동했고, 피카르는 롤렉스에 약 11,000m에서도 시계가 지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작동했다고 전했습니다.
잠수정 안에 있었다면 이 결과의 의미는 달라졌을 겁니다.
사람이 있는 내부는 잠수정 자체가 압력을 견뎌주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외부에 부착된 순간부터 시험 대상은 잠수정이 아니라 시계 자체가 됩니다.
롤렉스가 확인하려던 것은 사람이 시계를 차고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가 아니라, 시계라는 구조물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가였던 셈입니다.
사람이 차는 시계와 한계를 시험하는 시계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롤렉스가 모든 다이버 워치를 딥 씨 스페셜처럼 만들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같은 시기인 1953년에는 실제 다이버가 착용하기 위한 서브마리너가 등장했습니다. 최초 모델의 방수 성능은 100m였고, 회전 베젤을 이용해 잠수 시간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1967년에는 포화잠수 환경을 고려한 씨-드웰러가 등장했습니다. 최초에는 610m 방수와 헬륨 이스케이프 밸브를 갖췄습니다.
한쪽에서는 사람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다이버 워치를 만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착용성까지 포기하면서 시계가 견딜 수 있는 압력의 끝을 시험한 것입니다.
저는 딥 씨 스페셜을 단순히 '엄청 깊이 내려간 롤렉스'라고 보는 것보다 이 차이가 더 흥미롭습니다.
사람이 필요한 성능과 시계가 도달할 수 있는 기술적 한계를 같은 기준으로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52년 뒤에도 시계는 다시 밖에 있었다
1960년 한번으로 끝난 것도 아닙니다.
2012년 제임스 카메론이 DEEPSEA CHALLENGER를 타고 챌린저 해연에 단독 잠수했을 때 롤렉스는 새로운 실험용 시계 Rolex Deepsea challenge를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시계가 있던 곳은 잠수정 안이 아니었습니다.
잠수정의 매니퓰레이터 암 외부에 부착된 채 수심 10,908m까지 내려갔습니다. 당시 실험용 시계는 12,000m 방수를 보장하도록 설계 됐으며, 심해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했습니다.
1960년과 2012년 사이에는 5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방법은 같습니다.
시계를 보호하지 않고, 시계 자체를 환경에 노출시킨 것입니다.
실험이 실제로 차는 시계가 되기까지
그리고 2022년에는 조금 다른 일이 일어났습니다.
롤렉스가 2012년 실험용 모델에서 영감을 받은 딥씨 챌린지를 실제 판매 모델로 내놓은 것입니다.
11,000m의 방수 성능은 유지하면서 RLX 티타늄을 사용했고, 롤렉스는 실험용 모델보다 착용성을 개선해 손목에 착용할 수 있는 시계로 만들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1960년 딥 씨 스페셜의 의미도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처음부터 10,000m 방수 손목시계를 판매하기 위해 시작한 실험은 아니었습니다.
먼저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시계의 한계부터 확인했고,실제 다이버가 사용하는 시계는 서브마리너와 씨-드웰러라는 별도의 방향에서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 뒤 그 두 흐름이 조금씩 가까워졌습니다.
실험용 시계에서만 가능했던 수심을 이제는 실제로 손목에 착용할 수 있는 제품이 따라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롤렉스가 시계를 잠수정 밖에 달았던 이유를 단순한 홍보 장면으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잠수정 안에서는 사람과 시계가 함께 보호받습니다.
밖에서는 시계가 혼자 증명해야 합니다.
롤렉스가 알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시계를 차고 얼마나 깊이 갈 수 있느냐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갈 수 있는 깊이와 상관 없이, 시계 자체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1960년 트리에스테 밖에 달렸던 딥 씨 스페셜부터 2012년 제임스 카메론의 잠수정 외부에 달렸던 실험용 딥씨 챌린지까지, 롤렉스는 그 질문을 반복해왔습니다.
그리고 2022년에는 그 실험의 결과를 다시 사람이 착용할 수 있는 시계로 가져왔습니다.
먼저 한계를 확인하고, 그 다음 그 한계를 손목으로 가져오는 것. 저는 잠수정 밖에 달린 롤렉스가 보여주는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