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가 스피드마스터 '블랙 앤 화이트', 왜 문워치의 시선을 바꿨을까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문워치는 바꾸기 어려운 시계입니다.
비대칭 케이스와 블랙 다이얼, 세 개의 서브다이얼, 타키미터 베젤까지 오랫동안 이어진 요소들이 하나의 디자인으로 굳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크게 손대도 새로운 스피드마스터는 만들 수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문워치'에서는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 1월 공개된 스피드마스터 문워치 프로페셔널 블랙 앤 화이트 Ref. 310.30.42.50.01.004가 흥미롭습니다. 오메가는 문워치의 형태를 거의 바꾸지 않았습니다. 대신 우리가 이 시계를 바라보는 순서를 바꿨습니다.
문워치에서 먼저 보이는 것이 달라졌다
기본형 문워치는 블랙 다이얼과 세 개의 서브다이얼이 같은 계열의 색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크로노그래프 카운터는 분명 존재하지만 시계 전체의 모습 안으로 들어갑니다. 오랜 시간 문워치를 봐왔다면 이 균형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블랙 앤 화이트는 반대입니다. 폴리시드 블랙 다이얼 아래에 화이트 서브다이얼 세 개를 한 단 낮게 배치하면서, 기존에는 전체 디자인 안에 녹아 있던 크로노그래프 카운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화이트 서브다이얼의 로듐 도금 프레임과 폴리시드 디테일은 경계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고, 블랙 세라믹 베젤의 화이트 에나멜 타키미터 스케일까지 더해지면서 다이얼 전체의 대비도 강해졌습니다. 스텝 다이얼과 비대칭 케이스, '닷 오버 나인티(Dot Over Ninety)'처럼 문워치를 이루는 익숙한 요소는 그대로인데 첫인상은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스피드마스터의 세 개 서브다이얼이 본래 시간을 꾸미기 위한 요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크로노그래프의 경과 시간을 읽기 위한 기능적인 장치였던 요소가 이번 모델에서는 가장 강한 디자인 포인트가 됐습니다. 색은 블랙과 화이트 두 가지뿐인데 오히려 볼 것은 많아졌습니다. 오메가는 새로운 디자인을 추가하기보다, 이미 존재하던 요소 가운데 무엇을 먼저 보게 할 것인지를 바꿨습니다.
같은 리버스 판다지만 같은 시계는 아니다
물론 스피드마스터에서 리버스 판다가 처음 사용된 것은 아닙니다. 2017년 출시된 'Speedy Tuesday' Ref. 311.32.42.30.01.001 역시 블랙 다이얼에 밝은 서브다이얼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색을 사용한다고 해서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스피디 튜즈데이는 레이디얼 서브다이얼과 헤사라이트 크리스탈, 매트한 마감을 통해 1978년 알래스카 프로젝트 III가 가졌던 툴 워치의 성격을 강조했습니다. 반면 신형 블랙 앤 화이트는 래커 다이얼과 세라믹 베젤, 사파이어 크리스탈과 투명 케이스백을 사용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더 좋은가가 아닙니다. 같은 블랙과 화이트를 오메가가 서로 다른 시대의 스피드마스터를 설명하는데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2017년의 리버스 판다가 과거의 스피드마스터를 바라봤다면, 이번 모델은 현재의 문워치를 어디까지 다르게 보여줄 수 있는지에 더 집중한 시계에 가깝습니다. 같은 컬러 조합을 사용했지만 목적은 달라진 셈입니다.
바꾸지 않은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내부에는 기존 문워치와 같은 수동 와인딩 칼리버 3861이 들어갑니다. 케이스 역시 42mm라는 익숙한 비례를 유지합니다. 새로운 무브먼트도 완전히 달라진 케이스도 없습니다. 보통 신제품이라면 '무엇이 새롭게 추가됐는가'를 먼저 찾게 되지만, 이번 모델에서는 오히려 무엇을 그대로 남겨뒀는가가 중요해 보입니다. 문워치는 이미 성능이나 형태를 새롭게 증명해야 하는 시계가 아닙니다. 오메가는 그 기반을 건드리는 대신 다이얼과 베젤의 색, 소재와 마감의 대비를 통해 시계의 인상을 바꿨습니다. 칼리버 3861 역시 코-액시얼 이스케이프먼트와 마스터 크로노미터 인증, 높은 항자성을 갖춘 현행 문워치의 핵심 무브먼트입니다. 사파이어 케이스백에서는 로터에 가려지지 않은 수동 크로노그래프 구조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피니싱 자체를 하이엔드 수동 무브먼트와 비교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번 모델에는 투명 케이스백이 잘 어울립니다. 과거의 문워치를 그대로 재현하려는 시계라기보다, 지금의 문워치를 조금 더 보고 싶은 시계로 만든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 변화가 오히려 문워치에 잘 어울린다고 봅니다. 오랫동안 이어진 디자인은 새로운 것을 많이 더한다고 반드시 더 좋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뀐 것은 문워치가 아니라 우리가 보는 순서다
블랙 앤 화이트를 완전히 새로운 문워치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비대칭 케이스도 그대로이고, 타키미터도 그대로이며, 칼리버 3861 역시 그대로입니다. 달라진 것은 그 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부분입니다. 기존 문워치에서는 전체 디자인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던 세 개의 서브다이얼을 앞으로 끌어냈고, 래커와 세라믹이라는 소재를 통해 그 대비를 더 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기능을 더한 것도 아니고, 문워치의 형태를 다시 그린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시계를 바라보는 인상은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이번 모델은 문워치를 새롭게 만든 시계라기보다 익숙한 문워치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 시계에 더 가깝습니다.
오메가가 바꾼 것은 문워치의 공식이 아니었습니다.
그 공식을 읽는 순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