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WC는 왜 20년째 어린 왕자를 놓지 못할까?
2006년 IWC는 작가이자 비행사였던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유족과 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26년, IWC는 다시 한번 대규모 '어린 왕자' 컬렉션을 공개했습니다. 새로운 파일럿 워치는 물론 처음으로 포르토피노까지 어린 왕자 에디션의 영역에 들어왔습니다. 20년이라는 시간을 생각하면 한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하나의 문학 작품을 활용한 협업이 이렇게 오래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답이 단순히 '어린 왕자'라는 캐릭터의 인지도에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IWC가 어린 왕자를 시계 위에 올려놓는 방식이 계속 달라져왔기 때문입니다.
시작은 어린 왕자가 아니라 생텍쥐페리였다
IWC와 생텍쥐페리의 연결은 처음부터 자연스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작가이면서 실제 항공우편 조종사였습니다. 파일럿 워치를 중요한 컬렉션으로 가지고 있던 IWC 입장에서는 단순한 유명 작가보다 훨씬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협업은 2006년 생텍쥐페리에게 헌정한 파일럿 워치 크로노그래프로 시작됐고, 이후 IWC는 2009년 설립된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청소년 재단과도 협력하며 교육과 자선 프로젝트를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2013년, 『어린 왕자』출간 7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작품 자체를 시계에 본격적으로 가져온 에디션이 등장했습니다. 이 흐름을 보면 IWC와 어린 왕자의 관계는 처음부터 캐릭터 라이선스를 활용한 협업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비행사 생텍쥐페리에서 시작된 관계가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까지 확장된 것에 가깝습니다.
[이미지 출처 : IWC 공식 홈페이지]
어린 왕자는 파일럿 워치의 분위기를 바꿨다
IWC의 파일럿 워치는 본래 기능적인 시계입니다. 큼직한 숫자와 굵은 핸즈, 높은 가독성처럼 조종사가 빠르게 시간을 확인하기 위한 디자인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 시계에 어린 왕자가 들어오면서 분위기는 꽤 달라졌습니다. 딥 블루 다이얼과 케이스백의 어린 왕자 그림, 별과 행성을 연상시키는 디테일이 더해지면서 공학적인 파일럿 워치에 여행과 우정, 탐험이라는 조금 더 감정적인 이야기가 생겼습니다. 실제로 IWC는 지금도 딥 블루 선레이 다이얼을 어린 왕자 에디션의 대표적인 디자인 요소로 설명합니다. 저는 이 지점이 IWC가 어린 왕자를 오래 활용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봅니다.
어린 왕자는 기존 파일럿 워치의 정체성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IWC가 원래 가지고 있지 않았던 감정을 더해줄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래된 공식은 익숙해진다
문제는 협업이 오래될수록 생깁니다. 블루 다이얼에 어린 왕자가 새겨진 케이스백. 이 조합은 어느 순간 IWC 어린 왕자를 가장 쉽게 알아보는 공식이 됐지만, 동시에 가장 쉽게 익숙해질 수 있는 공식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모델이 나와도 "기존 IWC에 블루 다이얼과 어린 왕자 그림을 추가한 것 아닌가?"라고 느껴질 여지가 생깁니다.
그래서 2026년 컬렉션에서 더 흥미로운 부분은 새로운 모델 수가 아닙니다. 어린 왕자가 시계 안에서 맡는 역할이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이미지 출처 : IWC 공식 홈페이지]
장식에서 기능으로 들어온 어린 왕자
2026년 새 컬렉션에는 IWC가 새롭게 개발한 퍼페추얼 캘린더 ProSet이 처음 적용됐습니다. 기존의 영구 캘린더와 달리 크라운 하나만으로 날짜를 앞으로 뿐 아니라 뒤로도 조정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IWC는 이 새로운 기술을 스틸과 화이트 세라믹의 어린 왕자 모델에서 처음 선보였습니다. 화이트 세라믹으로 제작한 어린 왕자 파일럿 크로노그래프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상징적인 변화는 따로 있습니다.
포르토피노입니다.
[이미지 출처 : IWC 공식 홈페이지]
어린 왕자가 처음 파일럿 워치를 떠났다
2026년 IWC는 처음으로 어린 왕자 에디션을 파일럿 워치가 아닌 포르토피노 컬렉션에 적용했습니다.
포르토피노 오토매틱 데이 & 나이트 34 어린 왕자는 6시 방향의 데이 & 나이트 디스플레이 안에 어린 왕자를 넣었습니다. 자정이 되면 달 위에 선 어린 왕자가 밤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 변화가 재미있는 이유는 단순히 컬렉션 하나가 추가됐기 때문이 아닙니다. 파일럿 워치에서는 생텍쥐페리가 비행사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린 왕자를 설명할 이유가 충분했습니다. 포르토피노에서는 그 연결고리를 그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IWC는 어린 왕자를 단순히 다이얼 위에 그려 넣는 대신 낮과 밤이라는 기능 속에 넣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낮과 밤이 바뀌는 기능을 어린 왕자의 여행과 연결한 것입니다. 그동안 케이스백에 숨어 있던 캐릭터가 이제는 다이얼 위에서 기능과 이야기를 동시에 설명하는 요소가 됐습니다.
저는 이 변화가 2026년 어린 왕자 컬렉션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미지 출처 : IWC 공식 홈페이지]
IWC가 어린 왕자를 계속 이야기하는 이유
어린 왕자는 이제 IWC에서 단순한 협업 캐릭터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오래 함께했습니다. 하지만 오래됐다는 사실만으로 전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블루 다이얼과 케이스백 그림만 반복했다면 오히려 협업의 의미는 점점 약해졌을 수도 있습니다. 2026년 IWC는 새로운 퍼페추얼 캘린더 기술을 어린 왕자에 먼저 적용했고, 화이트 세라믹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사용했으며, 처음으로 파일럿 워치 밖까지 컬렉션을 확장했습니다. 특히 포르토피노에서는 어린 왕자를 장식이 아니라 기능의 일부로 만들었습니다. 결국 IWC가 20년 협업의 중심에서 어린 왕자를 계속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같은 캐릭터를 반복해서 보여줘서가 아니라, 그 캐릭터가 시계 안에서 해야 할 일을 계속 바꾸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처음에는 파일럿 워치에 이야기를 더했고, 이제는 시계의 기능 자체가 이야기를 전달하게 됐습니다. 오래된 협업을 계속 이어가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계속 이어갈 새로운 이유를 만드는 일입니다.
2026년의 어린 왕자는 IWC가 그 이유를 아직 찾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모델에 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