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에 운트 죄네는 왜 무브먼트를 조립했다가 다시 분해할까?
[이미지 출처 : 랑에 운트 죄네 공식 홈페이지]
시계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수백 개의 작은 부품을 조립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어와 브리지, 스크류를 하나씩 맞추고 움직임을 조정한 뒤 무브먼트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보통이라면 이제 케이스에 넣고 시계를 완성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랑에 운트 죄네에서는 여기서 다시 무브먼트를 전부 분해합니다.
단순한 모델이든 복잡한 컴플리케이션이든 예외가 없습니다. 랑에는 모든 매뉴팩처 무브먼트를 두 번 조립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이미 제대로 움직이는 무브먼트를 왜 굳이 다시 뜯는 걸까요?
저는 이 과정을 단순히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이라고 보면 조금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랑에는 무브먼트를 완성하는 과정을 아예 두 단계로 나누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조립은 완성이 아니라 '맞추는 과정'이다
첫 번째 조립의 목적은 보기 좋게 완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 부품이 제대로 맞물리고, 무브먼트가 원하는 방식으로 움직이도록 기계적인 조건을 먼저 맞추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이미지 출처 : 랑에 운트 죄네 공식 홈페이지]
대표적인 것이 랑에의 3/4 플레이트입니다.
페르디난드 아돌프 랑에가 1864년 도입한 3/4 플레이트는 하나의 큰 플레이트가 여러 휠을 함께 지지해 무브먼트의 안정성을 높이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조립은 더 까다롭습니다. 여러 축을 동시에 맞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랑에의 공식 제작 과정에서도 워치메이커는 첫 조립 때 3/4 플레이트를 여러 번 장착하고 다시 분리하면서 각 휠의 엔드셰이크, 즉 축 방향의 미세한 유격을 하나씩 조정합니다.
한 번 끼웠다고 끝나는 조립이 아닌 셈입니다.
맞춰보고,
움직여보고,
다시 풀고,
조정한 뒤 또 맞춥니다.
여기까지 끝나면 무브먼트는 작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랑에에게는 아직 최종 무브먼트가 아닙니다.
[이미지 출처 : 랑에 운트 죄네 공식 홈페이지]
조정이 끝났는데 왜 다시 분해할까?
이유는 랑에가 사용하는 소재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랑에는 플레이트와 브리지를 저먼 실버(German silver)로 제작합니다.
이름과 달리 은이 들어가는 소재는 아니며 구리·니켈·아연을 기반으로 한 합금입니다. 랑에는 이를 별도의 표면 코팅 없이 사용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특유의 따뜻한 골드빛 파티나가 형성됩니다.
문제는 가공되지 않은 저먼 실버의 표면이 상당히 민감하다는 것입니다.
랑에 역시 지문이 흔적을 남길 수 있고 드라이버 같은 공구가 표면에 흠집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첫 번째 조립에서는 앞서 본 것처럼 플레이트를 계속 장착하고 분리하면서 부품을 조정해야 합니다.
즉 완벽한 마감을 먼저 해놓고 이 과정을 진행한다면, 이미 완성한 표면을 다시 공구와 손에 노출시키게 됩니다. 그래서 순서를 바꿉니다.
먼저 맞추고, 그다음 아름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 랑에 운트 죄네 공식 홈페이지]
첫 번째 조립의 흔적은 최종 무브먼트에 남기지 않는다
첫 번째 조립과 기능 조정이 끝나면 랑에는 무브먼트를 다시 완전히 분해합니다.
각 부품을 세척하고, 필요한 부품에는 최종 장식과 폴리싱을 진행합니다.
3/4 플레이트에는 글라슈테 리빙을 넣고, 골드 샤통은 미러 폴리싱하며, 첫 조립 때 사용했던 작업용 스크류도 최종 조립에서는 새롭게 열처리한 블루 스크류로 교체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두 번 조립하는 이유가 가장 잘 드러난다고 봅니다.
랑에가 원하는 것은 이미 한 번 완성한 무브먼트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첫 번째 조립에서 필요한 조정을 마음껏 끝낸 다음, 그 과정에서 사용된 상태와 최종적으로 고객에게 보여줄 상태를 아예 분리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첫 번째는 작동을 위한 조립이고, 두 번째는 그 조정이 끝난 부품들로 만드는 최종 조립입니다.
보이지 않는 부품까지 다시 마감하는 이유
두 번째 조립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랑에는 사파이어 케이스백을 통해 보이는 부분만 장식하지 않습니다.
공식적으로도 눈에 보이는 부품뿐 아니라 무브먼트 안에 가려지는 부품까지 거의 모두 수작업으로 마감한다고 설명합니다. 골드 샤통과 블루 스크류, 장식·폴리싱 된 표면, 손으로 직접 인그레이빙한 밸런스 콕 역시 랑에 매뉴팩처 칼리버에서 반복해서 볼 수 있는 요소입니다.
완성하고 나면 다시 볼 수 없는 면까지 손을 대는 것입니다.
이런 제작 방식에서는 두 번째 조립이 단순한 반복이 아닙니다.
마감을 위해 분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감된 부품만으로 최종 무브먼트를 만들기 위해 다시 조립한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이미지 출처 : 랑에 운트 죄네 공식 홈페이지]
두 번째 조립에서 비로소 남겨질 무브먼트가 된다
최종 조립에서는 마감을 마친 부품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다시 하나의 무브먼트로 만들어야 합니다.
랑에는 이때 50곳이 넘는 오일 싱크와 베어링 포인트에 모델에 따라 최대 여덟 종류의 윤활유와 그리스를 사용한다고 설명합니다.
복잡한 시계라고 이 과정을 생략하지도 않습니다.
1815 라트라팡트의 Calibre L101.2 역시 두 번 수작업으로 조립되며, 저먼 실버 브리지와 콕, 스크류 밸런스, 골드 샤통과 수작업 인그레이빙 밸런스 콕을 갖추고 있습니다.
결국 랑에가 두 번 조립한다는 것은 단순히 공정을 두 배로 반복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첫 번째 조립에서는 시계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완성하고, 두 번째 조립에서는 그 결과를 어떤 상태로 남길지를 완성합니다.
효율만 생각하면 상당히 번거로운 방법입니다.
이미 제대로 움직이는 무브먼트를 다시 전부 뜯고, 부품을 세척하고 마감한 뒤 똑같은 구조를 다시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 랑에의 케이스백을 조금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3/4 플레이트와 블루 스크류, 골드 샤통은 처음부터 그 모습으로 조립된 부품들이 아닙니다. 그 전에 이미 한 번 조립되고, 맞춰지고, 다시 분해하는 가정을 거쳤습니다.
완성된 무브먼트를 위해 한 번의 조립을 포기하는 것.
저는 랑에 운트 죄네의 두 번 조립을 가장 잘 설명하는 부분이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첫 번째 조립은 실패해서 다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 조립에 첫 번째 조립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필요한 과정입니다.